덕스탠스 vs 전향각, 내가 '덕크니컬'에 빠진 결정적 이유: 시야
스노보드 씬에서 스탠스 논쟁은 마치 스키와 보드 중 무엇이 더 재밌느냐를 묻는 것만큼이나 뜨거운 감자입니다. 전통적인 덕스탠스(Duck Stance), 정교한 카빙을 위한 전향각 테크니컬 라이딩, 그리고 그 사이의 묘미를 찾는 덕크니컬까지. 사실 이 모든 것은 정답이 없는 '취향'의 영역입니다. 취향이라는 이름 아래 평화로운 휴전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장 치열한 토론의 장이 되기도 하죠.
오늘은 수많은 스타일 중 왜 제가 **'덕크니컬'**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 결정적인 이유인 **'시야(Field of Vision)'**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확보된 시야가 주는 압도적인 안전성
제가 덕크니컬로 추구 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안전입니다.
일반적인 덕스탠스의 정석은 몸의 방향(어깨와 골반)을 보드의 직각 방향으로 두는 것입니다. 레귤러 라이더 기준 왼쪽 어깨와 골반이 노즈를 향하고, 고개만 자연스럽게 돌려 전방을 주시하죠. 운동역학적으로 가장 밸런스 있는 자세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귀가 노즈 쪽을 향하는 것이겠지만, 실제 라이딩에서 그렇게 탔다간 시야 확보가 아예 불가능해집니다.
문제는 저의 신체/심리적 특성이었습니다. 안경을 쓰고 고글을 덧쓰다 보니 시야가 좁아지는 데다, 등 뒤에서 접근하는 스키어나 보더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심리적 불안감이 컸습니다. 흔히 말하는 **'후방 사각지대로 인한 사고 노출 위험(Collision Risk)'**에 직면한 것이죠.
사실 이는 제 목이 뻣뻣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전형적인 오른손잡이 체형으로 학창 시절 한쪽으로만 가방을 메고 다닌 탓에, 오른쪽 어깨는 처지고 왼쪽 어깨는 말려 올라가 있습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턱 하고 막히는 느낌이 들며 가동 범위가 제한되곤 하죠. 아마 많은 현대인 라이더들이 비슷한 신체적 비대칭 때문에 충분한 시야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계실 겁니다.
여기에 '주시안(Dominant Eye)' 문제도 한몫합니다. 저는 왼쪽 눈이 주시안이지만, 많은 분이 오른쪽 눈을 주로 사용합니다. 이 경우 코에 시야가 가려지는 '코가림 현상' 때문에 노즈 방향의 정면 시야를 온전히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답답한 고글까지 쓰고 힐턴(Heal Turn)에 들어가는 순간, 등 뒤의 위험 요소는 배가 됩니다.
반면 전향각 테크니컬 라이딩은 이 지점에서 매우 자유롭습니다. 몸 전체가 노즈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양쪽 시야가 활짝 열려 있어 슬로프를 넓게 쓰는 라이딩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충돌 사고 위험에서는 더 안전한 측면이 있습니다.
열린 시야가 주는 올라운드(Versatile)의 가능성
두 번째 이유는 열린 시야가 제공하는 다양성(Versatility)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애 첫 보드를 고를 때 대개 '올라운드 보드'를 선택합니다. 압설 슬로프는 물론 트리런(Tree Run), 파크(Park), 언그루밍 슬로프까지 두루 즐기기 위해서죠. 이러한 다양성이야말로 스노보드의 진정한 묘미입니다.
열린 시야는 이 다양성을 증폭시킵니다. 예를 들어 나무 사이를 누비는 트리런 상황에서 레귤러로 갈지 구피로 갈지 찰나의 순간에 판단해야 합니다. 이때 시야가 열려 있으면 판단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집니다. 파크에서 점프 후 착지 지점(Landing Zone)을 포착할 때도 확보된 시야는 성공률을 높여주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물론 "덕스탠스로도 충분히 잘 타는 사람이 많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미 고개와 어깨 앵글을 노즈 방향으로 활짝 열어 **'덕크니컬'**에 가까운 포지션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터레인(Terrain)의 차이가 만든 스타일의 진화
개인적인 추측입니다만, 일본에서 덕스탠스 카빙(한국의 신조어 덕크니컬)이 독자적으로 발전한 이유는 그들의 다양한 터레인(Terrain, 지형) 환경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나라 스키장은 대부분 인공눈을 단단하게 다진 압설(Groomed snow) 위주입니다. 이런 설질은 전향각 테크니컬 라이딩을 즐기기에 최적의 환경이죠. 사실 한국에서만 보드를 탄다면 전향각이 가장 효율적인 정답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본의 터레인은 매우 입체적입니다. 나무 한 점 없는 **아사히다케(大雪山旭岳)**의 대설산 라이딩이나, '벽(壁)'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의 아찔한 급사면, 빽빽한 트리런까지 존재하죠.
물론 일본도 시즌 초반에는 인공눈을 뿌리고 정설을 합니다. **하쿠바 47(白馬47 ウインタースポーツパーク)**이나 에이블 하쿠바 고류(エイブル白馬五竜) 같은 곳도 정설된 슬로프는 매우 깔끔하죠. 이런 다양한 지형과 정설된 사면을 오가며 최적의 퍼포먼스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야를 확보하면서도 카빙의 날카로움을 유지하는 일본 특유의 덕스탠스 카빙 스타일이 정착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론: 당신의 라이딩에 시야를 선물하세요
어떤 스탠스가 우월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슬로프 위에서 원인 모를 답답함을 느끼거나, 힐턴 때마다 뒤쪽이 불안해 움츠러든다면 한 번쯤 고민해 보시길 권합니다.
모든 터레인에서 자유롭고 신나게,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하게' 즐기고 싶다면 시야를 활짝 여는 덕크니컬이 그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보드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넓어지는 순간, 여러분의 라이딩 실력도 한 단계 점프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스타일을 찾는 데 작은 이정표가 되었길 바랍니다. 안전하고 즐거운 라이딩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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